
10만 원의 여비와 무너진 존엄
2018년의 어느 날,
우리 교회에서는 평생을 헌신하신 원로 목사님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라성 같은 분들이 모였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목회 강단을 내려온 그분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영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깊게 패인 주름과 하얀 머리칼은 그저 노쇠한 노인의 초상일 뿐이었다.
그날 내 심장을 가장 아프게 때린 사건은 행사가 끝날 무렵 일어났다.
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식사와 홍삼 선물,
그리고 10만 원의 여비를 봉투에 담아 전달해 드렸다.
그런데 한 목사님이 나를 따로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둘이 왔어. 아내랑 같이 왔으니 봉투를 하나 더 줄 수 없겠나?"
단돈 10만 원.
그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맞은 기분이었다.
평생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셨던 어른이,
은퇴 후 그 작은 돈봉투 하나에 당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참혹했다.
더 큰 비극은 행사장 밖에서 들려왔다.
"원로 목사님들은 이런 모임 다니느라 바쁘셔.
가면 대접해주지, 선물주지, 용돈도 주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지."
누군가의 이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나는 오각질이 났다.
평생을 바친 사역의 결말이
고작 '선물과 용돈을 챙기러 다니는 노인'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날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나의 뒷모습은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내 아내와 나의 노후만큼은 추하지 않게 지켜내야지.'
내가 안전화를 신고 쿠팡으로 달려가고,
생소한 주식 용어를 파헤치며 연금 지도를 그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단순히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은퇴 후에도 누군가에게 손 내밀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오히려 나눌 수 있는 '목회자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준비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자칫 비굴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는 '오지랖'은 나를 넘어 내 동료들,
그리고 다음 세대 목회자들이
끝까지 당당하게 사역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돕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실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