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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의 시작 - 은퇴라는 낯선 파도 앞에 서다

by oziwrap 2026. 5. 4.

쉰 살의 목사, 안전화를 신다

내 나이 어느덧 쉰이 되었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라는데,

정작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여전히 앞날이 막막한 한 사람의 가장일 뿐이었다.

 

강단 위에서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선포하지만,

예배당 문을 나서면 밀려오는 현실의 파도는 차갑기만 했다.

 

문득 멈춰 서서 자문해 보았다.

‘나의 노후는 정말 안녕한가?

단순히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론이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평안보다는 서늘한 불안감이 먼저 찾아왔다.

은퇴를 맞이할 65세, 혹은 70세의 나를 상상해 보았다.

만약 그때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평생을 헌신한 교회 앞에 서서

은퇴 전별금을 두고 갈등하는 선배 목회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미래가 가져온 서글픈 뒷모습일 뿐이다.

나는 나의 마지막이,

리고 내 사랑하는 동료들의 마지막이 교회와의 갈등이나 자녀에게 짐이 되는 모습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나는 2024년 8월, 처음 쿠팡 물류센터에 갔다.

목사라는 직함을 잠시 내려놓고 발에 익지 않은 딱딱한 안전화를 신은 채

땀 흘리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누군가는 묻는다.

 “목사님이 왜 그런 곳까지 가서 고생을 하시느냐”고, 

 

나의 대답은 명확하다.

미리 준비하는 태도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삶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가장 신실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오지랖’의 시작도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되었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미국 배당주를 공부한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 목회자들과 미래에 함께 만나서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할때, 미리 준비한 덕에 이렇게 여유로운 삶을 받았다는 소리를 한번 듣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목회자들이 노후라는 단어 앞에 작아지는 이들에게

내가 먼저 넘어져 보고 닦아 놓은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도 당신처럼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 투박한 오지랖이 누군가에게는 은퇴라는 거친 파도를 넘게 해줄

작은 뗏목이 되기를 소망한다.

 

내 인생조차 완벽히 책임지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발견한 이 지식과 정보들이

동행하는 이들의 삶에 따뜻한 위로와 실제적인 대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록을 시작한다.